回顧韓高恩先苦後甜的人生勵志史

滬江韓語 發佈 2020-04-18T13:56:00+00:00

沒有學過表演,不曾經歷過無名時期,一開始就挑大樑的幸運對她來說反而是毒害,演技的不足直接就暴露無遺了。

韓國演員金高恩因為美麗的外貌和獨特的氣質而經常在電視劇中出演白富美或者能力高的職業女性,得到許多觀眾的喜愛。但是真實的韓高恩的生活並不順遂,甚至可以算得上是艱苦。下面我們就來看看這位女演員先苦後甜的人生吧。

흔히 여배우에게는 그만의 아우라가 있다고 하지요. 화려한 이목구비와 종잇장 같은 몸매를 보면 정말 이슬만 먹고사는 다른 세상의 다른 종족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민이나 유학을 통해 해외에 거주하다가 국내에서 데뷔한 배우들의 경우 왠지 모를 '귀티'와 함께 금수저의 포스가 풍기는데요.

我們常說女演員都屬於自己的光環。她們美麗的五官和宛如紙片人般的身材都讓她們看起來就像只需要喝露水,火災另一個世界的其他種族一樣。特別是通過移民或者留學,在海外居住後回到韓國出道的演員們,不知為何身上會散發出」貴氣「和富二代的感覺。

데뷔 26년 차의 이 배우 역시 워낙 럭셔리한 분위기와 화려한 미모 덕분에 주로 부잣집 딸이나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의 역할을 맡아왔지요. 하지만 늘 화려해 보이던 그에게는 남모를 가난의 아픔이 있었다고 합니다.

這位出道26年的演員因為其貴氣和艷麗的美貌,所以過去主要演繹了富家女或者有能力的職業女性角色。但是看起來總是如此光鮮的她其實經歷過不為人知的窮苦。

화려한 미모와 도시적인 이미지로 남다른 아우라를 풍기는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배우 한고은입니다. 데뷔 초 시트콤 'LA아리랑'에서 공주병 재미교포 '샤나'역을 맡아 남다른 매력을 발산한 한고은은 실제로 중학교 시절 이민을 간 이후 연예계에 데뷔하기 전까지 미국에서 생활한 해외파인데요. 신인시절 한고은의 소속사는 럭셔리하고 도회적인 이미지메이킹을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지낸 이력을 활용하기도 했습니다.

這位有著艷麗的外貌和都市女性形象,散發出不同他人的氣質的女演員就是韓高恩。出道之初在都市喜劇《LA阿里郎》中飾演有公主病的在美僑胞夏娜,散發出與眾不同的氣質的韓高恩實際上在中學時期移民後,在演藝圈出道之前都在美國生活。所屬公司為了給新人時期的韓高恩打造出奢華都市形象還利用了他子啊美國加利福尼亞生活的經歷。

실제로 당시 보도자료를 보면 한고은에 대해 "송윤아의 도회적 세련미에 모델 이소라의 섹시함, 김희선의 발랄함을 한데 모은듯한 이미지"라며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에서 보낸 덕에 이국적인 분위기까지 가세한다"라고 강조했지요.

實際上,看當時的報導資料就能發現,對韓高恩的描述是這樣的,」宋允兒的都市幹練美,模特李素拉的性感,金喜善的活潑集於一體的形象「,」從中學時期到大學時期都在美國加利福尼亞生活,所以還多了一股異國風情「。

하지만 이미지와 달리 실제 한고은의 이민생활은 럭셔리하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 한고은 아버지의 의류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 가난했던 한고은의 집안은 이민을 가서도 형편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요. 때문에 어머니는 주유소와 옷 가게 아르바이트를 했고 세 자매 중 둘째인 한고은 역시 어린 나이부터 학비와 용돈을 벌기 위해 각종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但是,和她的形象不同的是,實際上,韓高恩的移民生活並不光鮮。韓高恩小時候,因為其父親的服裝事業不順利,所以家境貧困的韓高恩一家就算移民了,家境也並沒有多大的變化。她的母親在加油站和服裝店打工,作為三姐妹中老二的韓高恩小時候就為了賺取學費和零花錢而四處打工。

중고등학교 시절 책가방을 메고 학교만 가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한고은은 너무 가난해서 끼니를 때우기 힘들 정도였는데요. 매일 새벽 5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하면서 식사를 할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일본산 미니 컵라면 하나로 하루 식사를 대신하는 날이 대부분이었지요. 그조차도 여유 있게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스프를 반만 넣고 계속 물을 넣어서 먹어야 했던 한고은은 식당에서 무료로 주는 타바스코 소스를 넣어 싱거운 간을 맞추기도 했습니다.

在中學高中 時期,能夠別的不做,只背著書包去上學是韓高恩的願望,那時候的她因為家境艱難,到了連三餐維繼都難的境況。每天從早上5點開始工作到晚上12點,沒有錢和時間吃飯,所以大部分時候,她每天都用日制的迷你杯麵代替一天的飯食。就連那也沒辦法常吃,所以不得不只倒入一半的調味料,不斷加水吃的韓高恩甚至還往裡面加餐廳免費提供的塔巴斯科辣椒醬調味。

당시 미국에서 한국라면이 비싸서 일본산 라면만 먹었던 한고은은 "한국라면을 먹고싶다"라는 소원과 함께 "알약 하나만 먹고 배가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는데요. 여동생 역시 같은 말을 하는 걸 듣고 마음이 아팠다고 하네요.

當時,因為美國的韓國拉麵貴,所以只吃日產拉麵的韓高恩」想吃韓國拉麵「的願望,還曾想過:」如果能吃一顆藥就能不餓肚子就好了「。據說她聽到妹妹也說了同樣的話後心裡很痛。

힘들게 학창시절을 보낸 한고은은 1995년 슈퍼 엘리트 모델 선발대회 출전을 계기로 한국에서의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같은 해 미스 남가주에 선정되어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한 언니 한성원은 미스코리아 '미'에 당선된 것에 반해 한고은은 슈퍼엘리트모델 선발 대회에서 입상하지 못했지요.

艱難度過學生時代的韓高恩因為1995年參加超級精英模特選拔大會而開始了在韓國演藝圈的生活。同年他被選為南加州小姐後,和參加韓國小姐大毀的姐姐韓成媛當選韓國小姐季軍不同,韓高恩在超級精英模特選拔大會上沒有得獎。

다만 연세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언니 한성원은 모델 활동과 학업을 병행하느라 바빴고, 한고은은 입상자가 아님에도 'LA아리랑'을 비롯해 영화 '태양은없다'까지 캐스팅되면서 배우로 입지를 다질 수 있었습니다. '태양은없다' 촬영 당시 한고은은 연기 경험이 워낙 없다 보니 한 장면을 촬영하는데도 수십 번 NG를 냈고 다행히 상대 배우인 정우성이 이에 대해 싫은 내색을 한차례도 하지 않았던 덕분에 무사히 촬영을 끝냈지요.

不過,在延世大學經營系在學的姐姐—韓成媛因為同時兼顧模特活動和學業非常繁忙,韓高恩雖然沒有入選,但是她卻被《LA阿里郎》還有電影《日出城市》選中出演,鞏固了自己作為演員的根基。《日出城市》拍攝當時,韓高恩因為沒有表演經驗,所以拍攝當時數十次NG,萬幸的是,和她演對手戲的鄭雨盛並沒有對此表現出厭煩,所以她才能最終順利過了。

데뷔하자마자 연기 활동의 기회까지 얻은 한고은은 1999년 한 스포츠 의류의 광고를 통해 섹시한 매력을 선보이면서 본격적으로 대중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광고에서 한고은은 지하철을 기다리는 도시 여자의 분위기와 윈드서핑을 즐기는 건강한 이미지를 동시에 보여주었고 해당 광고 이후 한석규, 류시원 등 당시 최고 스타들과 함께 각종 CF에 출연하면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一出道就獲得了演戲機會的韓高恩隨著在1999年通過某體育服飾廣告展現了性感魅力,開始正式吸引了大眾的目光。當時,在廣告中,韓高恩同時展現了在等地鐵的都市女性的氣質以及享受風帆衝浪的健康形象,在該廣告後,她還和韓石圭,柳時元等當時頂尖明星們義氣拍攝了各種CF,一躍躋身明星行列。

CF퀸이자 연예정보 프로그램의 진행까지 맡으며 대세 스타가 된 한고은은 아이돌스타와의 공개 연애를 시작하며 '쿨한 이미지'가 더욱 굳혀졌습니다. 다만 데뷔 직후부터 시작한 연기는 쉼 없이 꾸준히 이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많았는데요. 연기에 대한 공부나 무명시절 없이 처음부터 큰 배역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이 독이 되어 연기의 부족함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지요.

成為CF女王,甚至還擔任了演藝信息節目的主持人,成為了大勢明星的韓高恩開始和愛豆明星公開戀愛,她「瀟洒的形象」更加深入人心。但是在出道後就開始表演的她雖然不停地堅持演戲,但是卻引發了很多爭議。沒有學過表演,不曾經歷過無名時期,一開始就挑大樑的幸運對她來說反而是毒害,演技的不足直接就暴露無遺了。

특히 발음과 관련한 비판을 받아온 한고은 2000년대 초반 늘 시상식에서 수상자로 호명되었지만 인기상, 포토제닉상에 그쳤고 연기력으로 수상한 경험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2년 즈음부터 연기에 대한 욕심을 가지게 된 한고은은 본격적으로 연기공부를 시작했지요. 연기공부를 시작한 '이 시기'에 대해 한고은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特別是被批評發音問題的韓高恩在2000年代初期雖然在頒獎典禮上經常獲獎,但是卻止步於人氣獎和最上鏡獎,不曾憑藉演技得獎。從2002年開始,開始想要提升演技的韓高恩正式開始學習表演。對於開始學習表演「這段時期」,韓高恩說:「成了我人生的轉折點」。

하루아침에 혹평을 호평으로 바꾸지는 못했지만 따가운 질책과 비판에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연기 경험을 쌓아온 한고은은 2006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과야망'을 통해 한층 성장한 배우로서의 모습을 보이는데 성공했습니다. 작품이 방영되기 이전부터 캐스팅 논란에 휩싸였고 작품 초반 호불호가 갈려 언론을 뜨겁게 달구던 연기력 논란은 작품이 중후반부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사그라들어 한고은의 연기를 인정하는 분위기로 바뀌었지요.

雖然沒辦法一天之內就將差評轉為好評,但是即便受到刺人的指責和批判,韓高恩也不放棄自己,堅持積累表演經驗,在2006年通過金秀賢作家的電視劇《愛情與野望》成功地展現了成長的一面。在作品播出前還身陷選角爭議的她因為演技爭議在作品初期還被媒體炒得火熱,隨著作品播出進入中後半後,爭議的聲音逐漸消失,人們開始認可韓高恩的演技。

또 이듬해 드라마 '경성스캔들'에서는 한고은 만의 연기 스타일을 사랑하는 팬들도 생겼습니다. 해당 작품을 통해 한고은은 데뷔 후 처음으로 연말 시상식에서 '여자조연상'을 수상해 연기력을 인정받았지요.

並且,第二年,在她出演電視劇《京城緋聞》時,還出現了喜歡她獨有的表演方式的粉絲。通過該作品,韓高恩在出道後首次在年末頒獎典禮上獲得了最佳女配角獎,演技得到了認可。

이후 한고은의 연기력에는 더 이상 논란이 없었습니다. 한고은은 더 이상 CF퀸이나 모델출신, 혹은 섹시스타라는 호칭으로 불리지 않았고 작품마다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배우의 모습 그 자체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之後,韓高恩的演技不再引發爭議了。韓高恩不再被稱為CF女王或模特出身,性感明星等,在每一部作品中都展現出不斷發展的面貌,以演員的身份成長著。

그리고 데뷔 20년 차에 접어든 지난 2015년 한고은은 결혼을 통해 또 한 번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사랑과 결혼에 대해 "미친 호르몬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다는 한고은은 지금의 남편 신영수를 만난 이후 생각이 180도로 바뀌었고 만난 지 단 101일 만에 결혼에 골인했지요.

並且,在出道20年的時候,即2015年,韓高恩通過結婚再次迎來了人生的轉折點。在遇到丈夫之前,她對愛情和婚姻的想法是「是瘋狂分泌的荷爾蒙的惡作劇」。而在遇到現在的丈夫申英洙後,她的想法發生了180度的變化,在認識101天的時候就結婚了。

결혼에 대한 생각 자체가 부정적이던 한고은의 마음을 순식간에 바꿔놓은 상대는 홈쇼핑 MD로 재직 중인 신영수입니다. 두 사람은 소개팅으로 처음 만났고 신영수는 한고은과 소개팅으로 만나기 전 카톡을 주고받을 때부터 이미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라는 마음을 먹을 정도로 반했는데요. 한고은 역시 첫 만남에서 신영수에게 반했지만 그가 너무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느껴서 오히려 "나한테서 도망가라. 좋은 사람 만나라"라며 밀어냈습니다. 다행히 신영수가 한고은의 말을 듣지 않은 덕분에 두 사람은 두 달 만에 결혼을 결심하고 한 달 만에 결혼을 준비해 부부가 되었지요.

瞬間改變了對結婚本身就想法負面的韓高恩的人是在擔任家庭購物MD的申英洙。兩人通過相親認識,申英洙在和韓高恩相親前,在兩人通過kakaotalk聯繫時開始就喜歡上了她,下決心「我要和這個女人結婚」。韓高恩在第一次見面的時候也喜歡上了申英洙,但是覺得他是個很善良很好的人,所以反而推開他:「離開我,去認識好的對象吧」。萬幸的是,申英洙並沒有聽從韓高恩的話,所以兩人僅交往了2個月就決定結婚,在準備了1個月後就結成了夫婦。

자신의 인생 계획에 없던 결혼생활을 시작한 한고은은 "결혼 전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오히려 죽는 게 쉽게 느껴질 정도로 치열하게 살았다"라며 "하지만 결혼하고 가장 달라진 건 세상에서 죽는 게 제일 무섭다"라고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더불어 시아버지를 처음 만난 날 "이제 내려놓고 남편 의지하고 살아라"라는 말씀에 정말 감사했다며 시부모님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는데요. 실제로 한고은은 2017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 시부모님을 친부모님처럼 의지하며 지낸다고 하네요.

韓高恩開始了以前沒被列入自己人生計劃中的婚後生活,她說:「結婚前因為活著本身太難,所以過得很緊張,緊張到覺得死反而更容易」,「但是結婚後,變得最不同的就是死成了世界上最可怕的」,表達了對丈夫的感激。並且她還說到了第一次見到公公的那天,公公對她說:「現在放下包袱,依靠你的丈夫吧」,讓她很感激,表達了對自己公婆不同他人的愛。實際上,金高恩在2017年母親過世後就將公婆當成父母。

한편 한고은의 여동생 한나라는 일찍부터 일을 시작해서 집안 생계를 책임져준 언니 한고은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언니가 거의 나를 시집보낸 그런 상황"이라며 "언니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꼭 보답하고 싶다"라는 마음을 표현했는데요.

一方面,韓高恩的妹妹韓娜拉對一早就開始工作,負責家裡生計的姐姐韓高恩感到抱歉的同時也很感謝她。她說:「幾乎是姐姐送我出嫁的那種情況」,「真心尊敬姐姐,也想要報答她」,表達了自己的心意。

어린 시절부터 가족을 위해 책임감으로 치열하게 살아온 한고은이 이제는 가족들의 울타리 안에서 조금은 여유로운 마음으로 꽃길만 걷길 응원합니다.

希望從小時候開始就為了家人,肩負著責任感過得緊張的韓高恩現在在家人們築起的柵欄內,以稍微輕鬆自在的心一路順利走下去吧。

重點詞彙

가세하다:(自動詞) 加入 ,參與 ,協助 ,幫助 。

아우라:(名詞)光暈 ,靈光 ,光環

엘리트:(名詞) 精英 ,精銳 ,主力 ,傑出人物 ,優秀分子 ,尖子

소개팅:(名詞)相親

치열하다:(形容詞)熾烈 ,激烈 ,劇烈 ,熾旺

重點語法

1.-에도 불구하고

前句是某行為或狀態的結果,後句接與前句結果期待不同的事實或相反的事實。形態:接到名詞或名詞形後。

많은 고생에도 불구하고 일을 제대로 끝내지 못했다.

儘管很辛苦,但事情還是沒有完成。

引申:

-(으)ㅁ에도 불구하고

表示「不顧…,不拘…,儘管…」。

形態:接在動詞、形容詞、『이다/아니다』詞幹後、過去式(-았/었/였-)後。

철수는 몸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왔어요.

儘管哲秀身體不舒服,可還是來學校了。

2.-덕분에

表原因,但是「덕분에」後面的結果是好的。「덕분에」的字面意思是「多虧了......,托(你)的福....

덕분에 잘 잤습니다.

托你的福,我睡得很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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